저에게는 어릴때부터 차곡차곡 쌓인 경험과 기억들로 누군가에게 버려질 것 같은, 그래서 혼자 남게 될 것 같은 불안장애가 있습니다.
태어난지 한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저를 혼자 키우신 어머니는 늘 이곳저곳 아프셨습니다. 거기다 명이 짧다는 무당들의 말을 맹신하시고 본인도 일찍 세상을 떠날거라고 믿으신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제게 “엄마가 죽으면..” 이라는 말을 달고 사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왜 그런 말을 하냐고 울고 불고 난리쳤지만 어머니는 그런 상황을 미리 각오하라고 말해주는 거라 하셨죠. 형제도 없고 오직 내게는 엄마 뿐인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엄마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혼자 남을 두려움으로 불안했죠.
거기에 엎친데덮친격으로 가짜 아빠의 등장도 제 불안을 더 부풀게 했습니다. 아빠. 주변 친구들이 아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부러워하던 제게 어머니 딴에는 제 생각을 하신다며 낯선 남자를 데려와 제 아빠라고 하셨습니다. 삶이 힘들어 열심히 절에 다니시던 어머니가 절에서 봉사하시는 분께 부탁하신 거였죠. 지금 생각하면 참 웃깁니다. 아빠라기엔 너무 젊은 그 사람을 나는 왜 엄마의 아빠라는 한마디에 바로 아빠라고 믿고 안기고 의지했을까요. 아빠라면서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집근처 놀이터에 찾아와 가끔 놀아줄 뿐인 그 사람을요. 친구들에게 아빠라며 얼마나 자랑을 했던지.. 그런 그 사람도 며칠 오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습니다. 돌아가신 아빠가 미국에 가있다고 말해오셨던 엄마는 그 사람을 기다리는 제게 아빠는 다시 미국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죠. 오랜만에 보러와준 아빠가 나를 만나고나서 내가 미워진거라 생각하고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쌩판 남인 남자에게 아빠라고 그렇게 마음을 주고 또 찾아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울다니. 그 사람은 그저 엄마의 부탁에 제가 안쓰러워 도와준 것 뿐인데 말이죠.
그렇지만 저를 생각한다고 하신 엄마와 그 남자의 행동은 제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누가 아무리 잘해주며 다가와도 사람의 마음을 가식이라 의심하고 결국은 나를 두고 떠날거라는 의심과 불신으로 똘똘 뭉치게 만들었죠.
그런 의심과 불안 때문에 이후 친구들과도 연인과도 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었습니다. 의심과 불안이 곧 집착을 낳아 버려질까 전전긍긍하다가 싸움이 되고 또 버려지는게 무서워 내가 먼저 버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이런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몇번의 친구들과 연인과의 절연을 겪고나서 제가 택한 방법은 홀로 지내는 겁니다. 버려지는게 두렵고 불안해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홀로 지냅니다. 정말 황당한 일이죠. 하지만 외로울지언정 버려질거라는 두려움과 불안은 없어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집착으로 상대를 힘들게 할 일도 없으니까 어쩌면 모두에게 좋은 거겠죠.
어머니는 그런 저를 많이 걱정하십니다. 사실은 저도 걱정입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계셔서 가끔 이야기할 대상이라도 있지만 나중에는 정말 저는 혼자일테니까요. 어머니가 떠나실때 함께 떠나는게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겁쟁이라 그럴 자신도 없네요.
이렇게 살면 안되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사람을 막지 말고 믿고 함께 해야하는데 쉽지 않네요. 마음을 열었다가 버려질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 여전히 누가 말을 걸어오면 피하기 바쁜 제가 참 한심합니다.
작성자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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