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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것이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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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단공포증, 혹은 첨단공포증이라고 부르지요.

저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공포증이 있어요.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니 기분이 이상한데

저는 전생에 칼에 베였거나 찔려 죽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저는 겁이 정말 없는 편이거든요.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렸고

출렁다리 위에서는 뛰어 다닙니다.

무섭다고 소문난 놀이기구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탈 수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을 보면 공포감이 느껴집니다.

칼이나 주사뿐만 아니라 젓가락끝, 포크, 연필이나 볼펜 같은 것에서도 공포감을 느끼고

종이에 베이는게 무서워서 종이를 많이 만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골무를 끼고 있어야 마음에 안정이 됩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손가락질을 할 때

그 손가락이 내 눈을 찌를 것 같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구요.

일부러 찔리고 베이는 상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뾰족하고 날카로운 물건을 보기만 해도 나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고 다리가 저릿한 기분이 들어요.

무서운 영화를 볼 때도 총에 맞거나, 차에 치이거나 하는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는데 

칼을 쓰는 장면에서는 눈을 꼭 감고 귀도 막습니다.

칼쓰는 장면을 보면 꼭 귀신소리 같은 휘잉하며 칼이 공기를 가르는 

소름끼치는 특수효과음을 넣잖아요.

이건 말도 안되는 소원인걸 알지만 그 효과음은 좀 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칼 쓰는 것을 무서워해서

직접 요리를 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요리 솜씨가 전혀 늘지를 않네요.

잘게 써는게 무서워서 재료를 늘 큼직하게 썰거든요.

그리고 껍질을 까야하는 식재료는 거의 구입하지 않습니다.

과일도 껍질 채 먹을 수 있거나 까먹는 과일 위주로만 구입하구요.

다지기나 블랜더로 식재료를 다지거나 갈아내는 것,

그리고 설거지 할 때 그 칼날을 세척하는 것도 무섭습니다.

그나마 가위에 대한 공포는 좀 덜해서 가위로 자를 수 있는건 가위를 이용하는 편이예요.

건강을 생각해서 채썰은 야채샐러드나 라페를 자주 만드는데 집에 채칼이 없습니다.

채칼은 보기만 해도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섬뜩한 느낌이 들어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요.

한동안은 채썰은 모듬 야채를 사다 먹었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더라구요.

그래서 큰 결심을 하고 양배추를 사다가 직접 칼로 손질해보기로 한 적도 있었죠.

채칼은 용기가 나질 않으니 당연히 도전하지 못했고

칼로 조심조심 썰어냈는데 양배추 1/4통을 손질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그렇게 오래 걸렸는데 거의 손가락만한 두께로 썰었구요.

 

바늘... 당연히 너무 무서워합니다.

학교 다닐 때 가정시간에 바느질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친구들이 모두 바늘과 시침핀을 쥐고 있는데 

그 뾰족한 것들이 모두 내 눈을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정말 공포스러웠어요.

지금은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얼기설기 바느질을 하기도 하지만

제가 실 꿰인 바늘을 잡는건 아주 드문 일입니다.

 

제 앞에서 절대로 젓가락을 흔들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얼굴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칼이나 가위는 꼭 날이 보이지 않게 넣고 

바늘도 보이지 않는 곳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소름이 끼치고 섬뜩한 느낌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저는 뾰족한 것을 많이 만지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일을 하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제가 이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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