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단순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것 같아 무섭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특이한 형태로 발현되는 공포증이죠. 이게 일종의 고소공포증이라는 걸 안지도 사실 얼마 안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고소공포증이 도대체 어떻게 저를 괴롭히는지 지금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릴때부터 저는 죽음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본인도 일찍 떠날 운명임을 믿으시고 죽음을 입버릇처럼 입에 담으시던 어머니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저를 돌봐주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는 더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죠.
내 주변 모두가 죽는데 나도 죽어야 하는게 아닐까?
혼자 남기 싫다.
모두가 떠나기 전에 나 먼저 죽고 싶다.
이게 어린 나이의 제가 가슴에 늘 담았던 생각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죽고 싶지만 겁쟁이다보니 아프게 죽는건 싫더라고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죽는게 가장 편할 것 같았지만 약을 구하는 건 불가능 했고 어디서 목을 매달 자신은 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학교에서 단체로 간 여행에서 흔들다리를 건너다 꺅꺅대는 아이들 틈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뛰어내리고 싶다.
아픈게 싫다더니 희한하게 그런 충동이 들더군요. 빤히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니 뭔가 어지러우면서 상상 속에서는 이미 누가 나를 확 떠밀어 내 몸이 허공에 떠있고 저 멀리 바닥이 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흔들다리 난간쪽으로 바싹 다가가고 있더라구요. 이동하라고 소리치시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대로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면서 내가 뭘 하려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겁이 나더라고요. 내가 죽을뻔 했다는 사실이요. 우습게도 죽고 싶다더니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죽을걸 두려워한거죠.
그 뒤로 높은 곳이 무서워졌습니다. 높아서 떨어질까봐 무서운게 아니라 제가 저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뛰어내릴까봐요. 죽을까봐 두려웠다면서도 이후에도 조금이라도 높이가 있는 곳에 있게 되면 뛰어내리고 싶은, 아니 뛰어내려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거든요. 산 절벽은 물론 다리 위, 심지어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을때조차 비슷한 증상이 있습니다. 어쩌면 빨리 죽어야 한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압박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겁쟁이인 덕에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히 살아있고 이제 혼자 남을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될만큼 나이도 먹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스스로와의 약속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가 봅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혼자서 죽음에 대한 내기를 하는게 습관이거든요. 예를들면 재미삼아 퍼즐을 맞출때도 이거 몇분 안에 못맞추면 죽자. 이런 식으로요. 별거 아닌 것에 목숨을 걸죠. 결국은 생각뿐이고 실천도 못할 거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말뿐이라는 그 죽음에 대한 생각이 높은 곳에만 가면 다시 현실로 다가옵니다. 아래에서 저를 부르는 것 같고 당장 뛰어내리고 싶습니다.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괜찮지 않은거죠. 그래서 혹시나 저도 모르게 뛰어내릴까봐 늘 뒤로 물러서있습니다. 죽어야 하지만 죽기 싫어서, 살고 싶어서 높은 곳이 싫은... 이것이 저의 고소공포증입니다.
작성자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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