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고민상담소를 방문하신 적이 있는 제 직장상사인 그 분을 한번 더 모셔봅니다.
고민상담소에 방문하지 않으셨던 몇 달 동안 평소와 다름없이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기셨고
그 분 아래서 직속으로 일하던 직원 한명은 부서 이동, 한명은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 기록을 남기셨습니다.
일단 쌓인 에피소드를 방출하기에 앞서 성인 ADHD의 증상을 살펴볼께요.
① 집중과 집중 유지의 어려움
- 아주 간단한 일임에도 일을 끝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 일을 끝마치지 못합니다.
- 세밀한 부분을 간과하는 실수가 잦습니다.
- 별로 상관없는 광경이나 소리 때문에 쉽게 산만해집니다.
- 한 가지 일을 하다가 어느새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② 과도한 집중
- 책, TV, 컴퓨터 등 흥분과 보상이 있는 일에는 몰입합니다.
- 과도한 집중으로 인해 다른 중요한 일과 시간 개념을 잊어버립니다.
③ 비조직화와 건망증
- 정리 정돈을 잘하지 못합니다. 방, 책상, 차가 매우 어지럽습니다.
- 일의 예상 소요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만성적으로 지각합니다.
-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거나 계획적으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제자리에 놓지 않습니다.
④ 불안정함 혹은 끊임없는 활동
-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 자극적이고 흥분되는 일을 추구합니다.
-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 쉽게 지루해합니다.
⑤ 충동성
- 다른 사람의 대화에 자주 끼어듭니다.
- 자제를 잘 못합니다.
- 무례하거나 부적절한 생각을 그대로 내뱉습니다.
-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돌발적으로 행동합니다.
- 중독의 위험이 있습니다.
⑥ 감정 조절의 어려움
- 자존감과 성취감이 낮습니다.
- 비판에 대해 과민 반응하며 쉽게 좌절합니다.
- 감정 기복이 심하고 조급합니다.
- 예민하고 폭발적으로 화를 냅니다.
그 분과 관련되는 부분에만 색칠을 해보았는데 이것만 보아도 확실히 성인 ADHD가 맞는 것 같네요.
그 분은 저희 회사 초창기 멤버이고 지금은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분입니다.
결혼도 하셨고 자녀도 두셨어요.
제가 입사를 하고 전혀 부족할 것이 없어보이는 그 분을 처음 뵈었을 때
크게 충격을 받았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정리 정돈을 잘하지 못합니다. 방, 책상, 차가 매우 어지럽습니다 >
그 분은 혼자 방을 쓰시는데 방문을 열면 어마어마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흡사 정글같아요.
책상에 가득한 서류 더미, 각종 책, 택배 박스...
커피도 엄청나게 드셔서 컵이 기본으로 5개는 올라와 있어요.
일부러 쌓아두시는건지 책상 위에는 무언가가 항상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구요.
그런데 저보다 먼저 입사하신 선배님들의 말씀으로는
이 꼴이 그나마 나아진거라고 하더라구요.
예전에 종이 서류가 많이 나오던 시절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폐기해도 되는 서류까지 방에 쌓아두다가
나중에는 쌓아둘 곳이 없자 본인 책상 아래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책상 밑에 다리가 들어갈 공간도 없이 쌓아놔서
나중에는 의자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서류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일했다고 합니다.
<만성적으로 지각합니다>
저희는 사장님도 이 분의 지각을 포기했어요. 이 분 때문에 회의 시간을 바꿨습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혹시 드라마 두 개 동시에 보면서 책 읽는 분 보신 적 있나요? 저는 본 적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제 자리는 그 분 방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고개를 들 때마다 그 분이 왔다갔다 하는게 보입니다.
오늘만 한 50번은 본 것 같아요.
그 분 방 근처에 앉아 있는 직원은 너무 정신이 없다며 부서장님 허락 하에 아예 헤드폰을 끼고 일해요.
<별로 상관없는 광경이나 소리 때문에 쉽게 산만해집니다>
그 분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그 분의 미어캣 모드를 아주 쉽게 볼 수 있어요.
미어캣이 사막에 살며 주변을 경계 관찰하려고 두 다리로 서서 주변을 항상 두리번거리잖아요?
회의 시간이든 식사 시간이든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수시로 고개를 쭉 들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답니다.
이런 것들은 다 괜찮아요. 적당히 무시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분의 산만함이 직원들의 업무를 마비시키고 쓸데없는 시간을 쓰게 만든다는 점이예요.
이 분의 신기한 능력 중에 하나가
'내선 전화를 걸면서 동시에 핸드폰으로도 전화를 하고 사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카톡도 보내는' 능력입니다. 제 자리에 전화가 울려서 받으려고 손을 뻗는 그 짧은 순간에 내선전화는 끊기고 핸드폰이 울리고, 사내 메신저가 띵동 하는데 카톡도 옵니다. 그리고는 그 분이 "OO씨 자리에 없어요?" 하며 뛰쳐나오세요.
어떤 분은 팀원들이 모두 외부에 나가고 혼자 사무실에 남아계셨는데
뒷 자리 직원 책상의 전화가 울리길래 받으려고 하니까 전화가 끊기고
그 옆자리 직원 책상 전화가 울리고 끊기고, 그 다음 자리 직원 전화가 울리고 끊기고....
나중에 그 분이 말씀하시기로는
"전화가 따르릉, 하고 울리는게 아니라, -ㄸ ㅏ- 하고 끊겼다."라고 하시더군요.
과도한 집중으로 인해 다른 중요한 일과 시간 개념을 잊어버리는 에피소드도 차고 넘쳐요.
이 분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도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일을 정말 많이. 열심히.하세요. 능력도 있으시구요.
이 분이 들어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직원은 반드시 핸드폰을 무음 모드로 해야 합니다
새벽 두시고 세시고 전화를 하시거든요.
악의가 있는건 아닌 것 같고 일에 빠져서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시는 것 같더라구요.
안받는다고 뭐라 하진 않으시니 그냥 안 받는게 상책이예요.
예전에 신입이가 새벽 세시에 이 분의 전화를 받고 엄청 놀란 적이 있었나봐요.
급하지도 않은 일인데 그 시간에 택시타고 출근해서 부랴부랴 서둘러 일을 마쳤는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 새벽에 지시한 업무 결과는 물어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 분과는 정상적인 대화도 거의 불가능해요.
A프로젝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B프로젝트 이야기를 하세요.
이야기에는 맥락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으면 다들 어안이 벙벙해지잖아요.
일순간 조용해지고 다들 머리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는데 가타부타 말도 없이 휑하니 가버립니다.
그냥 본인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맥락도 없이 뱉어내는 것이겠지요.
덕분에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각자 들은 내용과 알고 있는 내용들을 조합해서
무슨 말인지를 추론해야 하기 때문에 버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아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
세살짜리 어린애도 알 것 같은 사람 간 대화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아서 참 힘드네요.
맥락도 없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쏟아내고 휑하니 사라지시니
직원들은 이 분과 이야기를 할 일이 생기면
나중에 다시 리뷰할 수 있도록 되도록 사내 메신저 이용하거나 녹음을 하기도 합니다.
일 하는 것도 힘든데 이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나 싶어서 너무너무 스트레스 받네요.
오늘 제 바로 윗 상사분이 오늘은 그 분께 전화 한 통화도 안받았다며 이상하다고 메시지를 보내셨어요ㅠㅠㅠ
근데 저 말은 우리 회사에서 금기거든요.
이제 내일 전화, 문자 폭탄 쏟아지겠네요.
너무 무섭습니다.
작성자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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