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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FJ] 투박하지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 전하기

https://mindkey.moneple.com/esfj/30784162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었어요.

 

저는 공부와는 거리가 조금 멀고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친하게 지내는 한 친구가 있었는데
편하게 친구를 '민수'라고 할게요.

 

민수는 반에서 소위 말하는 '정리의 왕' 이었어요.
교과목의 핵심정리, 노트 정리 등을 잘해서
친구들이 항상 민수의 노트를 빌려 가곤 했죠.

 

어느 날 민수에게 먼저 가서 얘기를 했어요.

 

"민수야 네가 나 공부 좀 도와줄 수 있어?"

 

고3이었던 저희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였죠.
저는 영어와 문학에 약했고
민수에게 같이 공부를 하자고 친근하게 다가갔어요.

 

그 후로 같이 노트도 정리하고 영어 단어 시험도
내주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도 추천해 주며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학기 2번째 모의고사가 끝나고
저는 민수를 은근히 피하며
소원하게 대했어요.

 

'아.. 성적이 생각보다 너무 낮게 나왔네.'

 

민수와 같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볼 면목이 없는 거예요..
사과를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소녀감성이네요.

 

저는 민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왜 그러는지 말도 못 하고 갑자기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어요.

 

민수도 왜 그러는지 이유도 모르고
저에게 말도 못 걸고 같이 피하더라고요
아마 서로 똑같은 감정이었을 거예요.

 

1주일 정도 후에 민수의 책상 서랍 속에
감수성 깊은 ESFJ답게
노트 한 장 찢어서 투박하게 쓴 편지를 넣어놨어요.

 

모의고사가 끝나고 성적을 확인했는데
같이 열심히 공부했던 영어와 문학 점수가
예상보다 너무 낮게 나와서 너를 볼 면목이
없었다는 내용을 적어서 조심스럽게 전했죠.

 

"민수 네가 시간 내가며 같이 공부하고
노트도 빌려줬는데 그만큼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왔어.. 그래서 네가 실망했을까 봐.."

 

민수에게 화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같이 공부하며 도와준 민수에게 미안해서
며칠간 피하게 됐다는 말을 전했어요.

 

조심스럽게 사과의 내용을 쓴 편지를 받아준
민수에게 참 고마웠어요.
10대 시절의 미묘한 감정선과 내성적인 성격에
직접 말로 하기엔 민망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민수도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뻤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성격이 소심해서 제게 왜 그러냐고 말도 못 하고
같이 피하게 됐다고 말하더군요.
다시 친한 친구로 지내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춘기 10대 시절의 감성이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잘 안가지만
그땐 그랬을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먼저 민수에게 사연을 얘기했다면
됐을 텐데 그냥 피하기만 해버려서
이상한 오해가 생겨버린 거죠.

 

누군가에게 '사과'를 한다는 건 참
어렵고 복잡한 일인 거 같습니다.

 

각자의 성향이 다 다르고 사과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죠.

 

저도 워낙 감성적이고 누군가와 안 좋은 관계를
만드는 자체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어렸을 땐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사과도 잘 못하고
피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사과하는 일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전에 민수와 소원해졌던 그 며칠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거든요.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면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써보는 것도 괜찮은 거 같습니다.

 

지금도 민수와 그때 일을 얘기하면 서로
민망해하며 웃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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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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