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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에 있었던 일이다.
회사 신입 직원들을 모아놓고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이였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을 모아놓고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는데
강의실에 앉아있던 신입 직원들 전부터 똑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핸드폰만 두들기고 있었다.
가끔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는 친구들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손가락만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로는 "내가 말하는 내용을 열심히 받아적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사람들의 정수리만 쳐다보고 있자니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20대 초반까지 피쳐폰을 사용하던 세대이다.
학교 다닐 때는 노트와 펜으로 필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살았다.
라떼도 노트북은 있었지만 강의실에서 노트북을 이용하는 사람은
고작해야 한 두명 정도였다.
지금은 나도 회의 중에 중요한 내용은 그때그때 스마트폰에 기록을 해두지만
라떼가 신입이던 시절에는 상사 앞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이였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모든 전자기기의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는 말 그대로 "스마트한"기계이지만
라떼의 핸드폰은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는 정도였기에
회의 중에 핸드폰을 꺼낸다는 것은 "나는 지금 딴 짓을 하고 있다."라는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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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더 이상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종이에 끄적거리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영화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래도 꽤 오랫동안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했었다.
본격적으로 내가 스마트폰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영화관에 갈 수도 없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생활이 이어지는데
집에서 할 일이 없었다.
나돌아다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집순이가 되려니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였다.
그때 접하게 된 것이 OTT 서비스였다.
원래 유튜브도 잘 보지 않고 드라마도 잘 보지 않던 사람인데
그 때 킹덤 시리즈가 엄청나게 히트를 쳤다.
킹덤을 보디 위해서 넷플릭스에 가입을 했고
가입한 김에 유명하다는 넷플시리즈를 모두 섭렵하기 시작했다.
넷플시리즈를 모두 섭렵한 뒤에는 국내에 서비스 중인 모든 플랫폼에 가입을 했다.
나는 눈이 두 개, 귀도 두 개, 테블릿은 하나 뿐인데
각각의 플랫폼들은 저마다의 매력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요즘 핫하다는 작품들을 빠른 시일내로 다 보고 싶었다.
나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비교하여
스마트폰 중독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였는데
중독이 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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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부터 넷플릭스를 해지하던 2023년까지.
내 인생에서 4년이라는 시간은 전부 OTT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보낸 것 같다.
틈만 나면 OTT를 켰고 자면서도 OTT는 틀어놓고 잠이 들었다.
시리즈가 한꺼번에 오픈하는 OTT의 특성상,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전부 드라마만 보면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중에는 딱히 보고 싶은게 없는데도 아무 영상이나 틀어놓기도 하였고
무엇을 볼지 스크롤만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작년에 넷플릭스가 아이디 공유 금지 정책을 내놓았을 때
나는 모든 구독 서비스를 해지했다.
심지어 유튜브 프리미엄조차도!!(이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SNS 영상을 보기도 하고 유튜브도 자주 들어가고는 있지만
확실히 무의미한 영상에 노출되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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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이 OTT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도파민"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눈에 띄게 자주 이슈가 되고 있는 마약 역시도 도파민과 큰 연관이 있다고 한다.
마약 뿐만 아니라 음주, 흡연, 음식, 도박, 쇼핑, 미디어 등
평범한 사람들도 흔하게 집착하는 모든 것들은
자극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 현대인들의
도파민을 갈구하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때문에 2024년의 주요 키워드 중에 하나가 "도파밍(Dopamine+Farming)"이라고 한다.
도파민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도파민의 분비는 인간을 흥분시켜서 삶의 의욕과 동기부여,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과도한 도파민 분비는 도파민 수용체를 감소시키고
도파민 감수성을 낮아지게 만든다.
도파민 수용체가 감소되면 같은 양의 도파민으로는 예전만큼의 쾌락을느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게 되고
도파민을 생성하는 행위(음주, 흡연, 음식, 도박, 쇼핑, 미디어)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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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 대해서 찾아보다보니
도파민 중독테스트가 있어서 한번 해보았다.
<도파민 중독 테스트>
#1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2 무언가를 계속해서 사고 싶은 충동이 든다.
#3 일을 끝마치지 않고 중간에 다른 일을 한다.
#4 게임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밤을 새운다.
#5 술과 담배를 즐긴다.
#6 이전에 느꼈던 쾌락보다 더 강하고 새로운 자극을 계속 찾고 있다.
#7 항상 무언가를 먹고 있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8 계속해서 살이 찌고 있다.
#9 감정 기복이 심하다
#10 기억력이 떨어졌다.
나는 무려 5개나 해당된다.
OTT 서비스를 줄이면서 나름 디지털 디톡스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작성자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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