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할머니와 태어날 때부터 쭉 같이 살았어요.
어릴 때 엄마, 아빠는 외출하시고 저는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가려고 초인종을 눌렀는데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시려고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거예요.
그때 제 나이가 5살? 정도였는데 할머니가 문 너머에 있는데 문은 안 열어주시니까 무서워서
할머니 할머니 부르면서 초인종을 누르고 막 울렀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아파트여도 이웃들끼리 다 가깝게 지내서 제가 복도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우니까 옆집, 아랫집, 윗집에서 다 뛰어오셨어요. 아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그때는 현관에 우유 구멍이 있었거든요. 그 구멍으로 손을 집어 넣으니까 할머니가 제 손을 잡으시더라구요. 아직도 그때 감촉이 생생해요. 옆집 아줌마가 애가 너무 놀라서 우니까 아줌마네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안가려고 할머니 손을 잡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도요.
다행히 엄마아빠가 시간 맞춰서 오셔서 할머니는 무사히 병원으로 옮겨지셨는데 그땐 너무 어려서 몰랐지만 아마 뇌졸중이셨던 것 같아요. 이후로 꽤 오래 사시긴 했지만 할머니는 그 때 쓰러지신 뒤로 계속 아프셨지요.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도 저는 할머니와 집에 단 둘이 있었어요.
돌아가실 기미가 있었다면 병원에 모셨거나 가족들이 모두 집에 있었을텐데, 전혀 기미가 없으셨어서 엄마, 아빠는 모두 외출하셨고 저는 아르바이트 간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나가기 전에 할머니 간식으로 포도 챙겨드리려고 할머니 방 문을 열었는데 이미 돌아가셨더라구요. 참.. 우리 할머니답게 한마디 말도 없이 너무 쿨하게 그냥 가버리셨네요.
이별 사연을 말하라고 하면 애인과의 이별이 먼저 떠오를 줄 알았는데 우리 할머니 얼굴이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저희 할머니.. 뭐랄까.. 참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평생을 같이 살았어도 손녀에게도 곁을 잘 안주셔서 저는 제가 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할머니 생각이 참 많이 나네요. 할아버지는 서울에 계셨고 할머니 혼자 북에서 자식들 키우시다가 전쟁이 났는데 남쪽으로 내려오시다가 자녀들 전부 잃으시고 할아버지와도 일찍 사별하셨대요. 참 긴긴 세월, 외롭게 사셨겠구나, 마음이 참 힘드셨겠구나, 이 나이를 먹고서야 할머니가 이해가 되네요.
문득 그때 그 시절에 아직도 멈춰있는 기분이 들어서
시간의 자리에 멈춰서다_힐링 사운드 님의 음악을 추천합니다.
할머니, 어디에 계시든 이제는 행복하세요.
작성자 그루잠
신고글 시간의 자리에 멈춰서다_할머니와의 이별
- 욕설/비하 발언
- 음란성
- 홍보성 콘텐츠 및 도배글
- 개인정보 노출
- 특정인 비방
- 기타
허위 신고의 경우 서비스 이용제한과 같은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