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핸드폰 통화 목록에는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문자나 톡 역시 부모님이나 광고 뿐입니다. 형제도 없고 친척들과도 연락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경조사가 있어도 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된걸까? 사실은 모두 제가 자처한 것들입니다.
처음부터 혼자인 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없는 편모 슬하의 외동이라 어머니가 일하러 가시면 늘 혼자여서 누가 놀러오거나 하면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외로워서 저와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주면 무언가를 해주겠다며 붙잡곤 했죠. 주로 제가 가진 것을 주거나 상대가 원하는걸 사주는 형식이었습니다. 제가 아버지 없이 크는걸 딱하게 여겨 어떻게든 당당하게 키우시고픈 어머니께서는 제가 갖고 싶다는 건 무엇이든 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있는 친구들조차 갖지 못한 장난감들이나 문구용품, 가전제품들을 마음껏 가질 수 있었죠. 어머니 나름은 무리해서 사주신 건데 그것도 모르고 저는 제가 누리는 것들이 많으니 부자인줄 알고 주변인들에게 제가 가진 것들을 마구 뿌리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는 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속성이 없었다는 거죠. 제게 받을 것을 받은 이들은 더이상 저를 찾지 않았고, 저를 달라면 주는 애라거나, 가진 걸로 잘난척 한다는 뒷말을 했습니다. 제 뒷담을 한다며 제게 알려준 이들조차 제게 무언가를 얻고 나면 돌아섰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동료이자 친구가 아니라 호구였던거죠. 하지만 오랜기간 습관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저는 제가 가진걸 내주며 살았습니다. 주기만 하고 받는건 늘 제로에 가까운 삶이었지만 늘 그랬다보니 문제인식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여겼습니다. 여전히 저를 전폭지원해주시는 어머니 덕에 좋은 학교도 나오고 좋은 직장도 들어가 연봉도 높아 더이상 어머니의 돈이 아니어도 되는 시기가 오니 오히려 전보다 더 마음껏 써댄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게는 여러 인연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흥청망청했던 시간이 지나고 난뒤 어머니가 은퇴를 하시고 연세를 드시니 갑자기 현실이 다가왔습니다. 어느덧 나 역시 나이를 먹을대로 먹었는데 모아둔 돈은 전혀 없었고 미래에 대한 준비 역시 전혀 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역시 제게 모든걸 투자하셔서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집마져 처분하셨다는걸 저는 몰랐습니다. 저는 정말 생각없이 살았죠.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더이상 의미 없이 돈을 써대는 건 멈춰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갑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만나는 지인들에게도 더치페이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그것이 저와 제 지인에게는 금기였나봅니다. 늘 제가 내는 걸 기대했던 그들은 하나둘 멀어져 갔습니다. 어리석게도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들에게 나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나는 그동안 의미없는 이들을 위해 내 미래를 희생했구나. 예전이었으면 다시 내가 돈을 내겠다며 붙잡았겠지만 이제는 그러기에는 늦은 나이였습니다. 그들에게 정이 떨어져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더라구요. 형제도 있고 의지할 사람이 많은 그들에 비해 저는 오직 어머니 뿐이었으니 제 미래를 책임질 것은 순전히 저의 몫이었습니다. 이제 나도 미래를 생각해야하니 전처럼 흥청대지 못한다고 밝히자 남은 사람은 고작 한명뿐이었습니다. 원래부터 빚지는걸 싫어하는 단한명. 누군가 친구는 진실한 친구 한명이면 된다했죠. 그러나 그 애는 형제가 많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걸 귀찮아해서 연락조차 잘 안하는 성격인 애였습니다. 저랑도 1년에 한두번 연락할까말까 하고 만나는건 3년에 한번 볼끼말까한 사이죠. 그런 그 아이 말고는 제게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뒤늦게 인간관계가 정리되고 나니 그제서야 어릴적의 일이 떠오르더라구요. 어릴때부터 나는 돈으로 임시로 함께 있어줄 사람을 산 것일 뿐이었다는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너무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돈을 쓰지 않고 사람을 사귀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새로 사귈 자신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커피 한잔을 마셨을때 그정도는 내가 사면 되지만 그걸 시작으로 또 이전처럼 되어버릴까봐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얻어마시자니 늘 사기만 해와서 부담스럽고 불편합니다. 회사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 때문에 불편해질 수 없으니 해오던대로 사야하는데 한번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보니 그들에게 쓰는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안쓰던 사람이 가끔 쓰면 칭찬 받아도 쓰다가 안쓰면 쪼잔하다는 소리를 듣는게 보통이죠. 그래서 저는 하루아침에 인색하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다시 되돌릴 마음은 없었습니다. 내가 사주던 상대가 알고보니 다들 저보다 부자더라구요. 저는 그걸 왜 몰랐을까요? 알고보면 제가 제일 가난했는데 나는 많이 쓴다고 자기가 마치 부자인줄 평생을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하다못해 회사에서 제게 굽신대던 후배직원들도 다들 나보다 부자에 미래를 설계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너무도 어리석게도 뒤늦게 깨닫고 나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내 자신을 숨기고 싶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과의 사적 만남을 중단했습니다. 일만 하고 사적인 대화도 안하고 로봇처럼 살기 시작했습니다. 퇴근하면 바로 집. 사람들과의 접촉이 싫어 헬스장조차 가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면 나를 밝혀야 하는데 그게 싫더라구요. 친구도 없고 빈털털이인 나니까.
그렇게 혼자 고립되어 살기 시작한지 3년에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편하자고 자처한 거라 아무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면 되니 심심할 것도 없었고 누군가를 안만나니 차곡차곡 돈도 모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문득 급잡스럽게 서글퍼질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북작대는 모습이나 친구들끼리 맛집을 다니는 모습 같은걸 보면 그게 참 좋아보이면서 나 자신의 처지가 생각납니다. 먹고 싶은 걸 먹으려면 배달시키는 방법뿐인 나. 가족이라곤 어머니뿐이라 늘 어머니 건강만이 인생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저도 의지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용기가 없습니다. 혼자인게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생은 이렇게 쭉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작성자 익명
신고글 이따금씩 밀려드는 고립감과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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