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회차] 타인하고 어떤 관계를 맺던 소모하는 에너지가 너무 크게 느껴져요.

사람마다 사회속의 상호작용에서 얻거나 잃는 에너지의 정도는 다양하다고 하는데,

저는 갑자기 확 방전되는 느낌을 자주 받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책도 읽어보고 내향인 외향인 관련해서

많이 공부도 해보고 그에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도 찾아보곤 했는데, 여전히 10년이 지나도

사람을 만나서 소모되는 에너지는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제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런 욕구를 좀 참더라도

혼자서 영화를 보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고 서점을 다니는게 훨씬 더 생산적으로 느껴져요.

일단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상대의 도덕적인 면모나 말하는 습관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실망감도 커지고, 그에 대한 피로감도 상당히 상승하는 게 몸소 느껴져요.

 

예를 들면 같은 팀에서 일하는 팀원이 커피 챗을 요청하거나 하면, 거절에 대한 리스크를 먼저 상상하게 되고

그에 대한 상대가 느낄 실망감이 먼저 우려되기도 합니다. 그 상황 자체가 발생하는게 많이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아니면 반대의 경우 대화가 성사되거나 20분 가량 무슨말을 해야하지? 어떤 대답을 해야하지? 어떤 질문을 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면서 복잡해져요. 결국 제 표현을 낯선 상대나 사람에게 나타내는게 익숙하지 않고

완벽해야한다는 부담감이 굉장히 크게 다가옵니다.

 

또한 나란히 걷거나 음식을 주문할때, 또는 대화를 할 때 배려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 사회적인 신호나

제스쳐를 읽어내야 하는 그런 여러가지 상황에서 제 예민한 성격이 더더욱 센서를 극으로 가동시키는 것 같습니다.

너무 부담 가지지 않고 그 순간은 그 순간으로 남기는 사회적인 얕고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해도

한편으로는 그런 관계는 또 부질없지 않나? 하는 끝없는 물음으로 시작되네요.

 

자꾸만 회피를 하게 되고, 이런 경향은 특히 전화가 오면 겁이 덜컥 나는 제 모습에서부터 발견이 됩니다.

사실 꼭 사람을 만나고 사회적으로 활발해야 성공하거나 제 삶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 강요받는 이 분위기가 불편하고 스트레스 입니다. 

 

가정에서 경험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건강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배우지 못했고, 옳다고 생각했던

외가쪽 어른들도 그다지 현명한 어른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30대에 들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어린 시절의 제가 꿈꿔왔던 것 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술을 자주 마시고 겉으로는 행복한 모임처럼 보이지만, 결국 돈을 내거나 해야 하면 회피하는 식구들의 모습도 너무나 모순적으로 느껴졌고, 그런 "책임감"이 없는 관계들에서 더더욱 피로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의 경험은 다른 지역의 여학생, 남학생들이 똘똘 뭉쳐 집단적인 성향을 강하게 가져가면서 배타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작은 사회라고 하던 대학이 굉장히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꽉 찬 지하실 같았습니다. 그만큼 그 곳은 어둡고, 답답했습니다.

 

회사에서의 경험은 운이 좋게도 밝고 청량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제가 우러러 볼 수 있는 멘토와

배울점이 많은 동료 그리고 유연한 사고방식의 타 부서 선배들도 많이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러가지 사회의 다른 집단과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은 다 같거나 혹은 다르지 않고, 경우에 따라 그리고 내가 해석하기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굉장히 큰 기쁨을 가져다 줄수도 있다는 것이 관계라고 배우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모든 관계가 진지하고 깊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완벽한 관계를 그리고 또 예의 바른 사람으로 비춰져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내향성은 깊은 사고와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쉽게 느끼는 실망과 피로는 해소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있어 큰 뜻이나 의미를 두지 않는 관계가 가능한 분들이 너무 건강해보이고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