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극복했지만 한때 저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손발이 차가워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소위 말하는 수습기간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예요.
그것도 꽤나 긴 시간을요.
어떤 일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더라도
사회에 나와서 수습생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나면
한 사람 몫은 고사하고 잘해야 0.5인분,
최소한 짐짝이라도 되지 않으면 다행이잖아요.
저도 최소한 짐짝이라도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던 평범한 수습생이였습니다.
저에게는 사수가 한분 계셨는데,
회사에서 유명한 분이셨어요.
실력은 굉장히 뛰어난 분인데 성격이 특이한걸로요...ㅠ
저는 살다살다 이렇게 성질 급한 분을 처음 봤어요.
성질이 급한 것도 문제지만
저에게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은
이 분의 고성이였어요.
그 분은 사무공간을 따로 사용하셨는데
제가 부사수가 되면서 저에게 전화를 자주 하셨어요.
근데 수습생이 하는 일이 그 분의 눈에 얼마나 차겠어요.
수습생의 입장을 이해해주시고 차근차근 알려주시면 좋았을텐데
전화를 받으면 그 분은 항상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ㅇㅇ씨!!!!!!!!!"
하고 소리부터 지르시더라구요.
그리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알아들은 수 없는 말을
"ㄷㄳ$ㄱ^$&%^%*^(*(&**(@!ㅇㄹ$#ㄹ!^"
하고 쏟아내십니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갑자기 트라우마가 다시 도지는 기분이네요....
요즘은 직장내 괴롭힘 같은 걸로 문제 삼을 수도 있을만한 중대한 사안이지만
제가 수습생일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가 못했거든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때는 일방적으로 그냥 온 몸으로 받아낼 수 밖에 없었네요.
그렇게 서너번 전화폭격을 받고 나니까
그 이후로는 전화 오는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어요.
핸드폰 벨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덜컥 내려 앉고
누가 전화를 한건지 번호를 확인할 때까지도 심장이 두근두근하구요.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을 때도 알림창에 그 분 방 번호가 찍혀있으면
그 짧은 순간에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손발이 급격하게 차가워지더라구요.
전화를 받는 것도 힘들었지만
제가 다시 전화를 드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진짜 미루고, 미루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던 것 같아요.
가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전화벨이 울린 것 같은 환청에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구요.
제가 평생을 날씬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 분 덕분에 한 달 동안 7kg이 그냥 빠졌습니다.
체중과 함께 머리숱도 같이 빠진건 안비밀입니다.
수습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은 전화 트라우마가 이어지다가
일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트라우마도 사라지더군요.
지금은 완전히 극복했지만
여전히 벨소리가 울리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모든 알림을 무음으로 해놓고 사는걸 보면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전화를 받을 때
귀에서 살짝 수화기를 멀리하고 받는건
그때 큰 소리에 놀랐던 흔적일지도요.
지금은 그 분이 다른 곳으로 가셨지만 동종 업계이다보니 가끔 얼굴을 뵙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사이좋게 지내고요.
지금은 그 분을 만나면 오히려 반갑고 좋은데
참 희한하게 여전히 그 분께 전화오는건 싫으네요.
작성자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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