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았어요. 거기서 자살 생존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구요.
'자살 생존자'는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살아남은 사람 또 사회적 관계에서 자살을 한 그 사람의 영향을 받는 주변 사람들, 즉 유가족과 가족 외의 친밀한 사람을 모두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해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중
-자살생존자 모임 장면-
'내가 아는 자살자, 아니 자살생존자를 안다고 해야 하나? ' 생각나는 이가 있었어요. 아이와 같은 반 친구의 엄마.
어렸을 적에는 지인이나 한 걸음 건너 지인의 지인이 자살을 시도했다거나 또는 자살을 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죽음이라는 관념이 머릿속에 깊지 않았기 때문인지 흘려 넘겨 듣고 별 일 없는 무난한 일상을 살 수 있었어요.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고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조부모, 부모, 가까운 지인, 친구로... 점점 내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 자각되면서 부터는 예전처럼 그렇게 간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게 되네요.
...
다시 돌아가서, 그 아이와 엄마는 단 두 식구만 사는 집이었기에, 그때 엄마의 자살을 처음 발견하고 목격한 이는, 바로 열 두살 된, 그 엄마의 유일한, 어쩌면 평생 아끼고 사랑했을 아들이었죠.
시간이 흘렀지만,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몸에서 느껴지던 전율과 소름의 느낌은 지금도 어렴풋히 기억이 나요. 그렇지만 제가 그 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다거나 하는 그런 건 아니예요.
새학년 초, 학부모 모임에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캐리어 우먼의 단아한 정장을 입고 수줍지 않은 모습으로 담소를 나누었던, '씩씩한 워킹맘이구나.' 생각이 들던 사람이었네요.
사고 소식을 처음 접하고, 많은 감정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엄마인데, 어찌 무책임하게 아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마지막을 간단 말인가?' 싶은 생각에 전율을 느꼈던 거 같아요. 그 불쌍한 감정보다 먼저, 저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제 생각이나 상상따윈 중요한 게 아니죠.
자살 유가족이 되면 한 평생 끔찍한 죄책감을 겪게 된다죠. 주변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느낀다고 하구요. 가까운 사람을, 그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지독한 고통을 받는다고도 . 목격까지 했으면 오죽했을까.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고 울어도 괴롭다고 하는데,
아이는 , 그리고 나서 본 적이 없어요. 엄마와 따로 별거 중이었던 아이의 아버지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다른 동네로 데리고 갔고 그 때문에 전학을 했기 때문이죠.
그 아인 지금 어디서 빛나는 햇빛을, 따스한 햇살을, 산들산들한 철따라 달라지는 바람들울 온전히 제대로 느끼며 살고 있을까요?
대한민국이 자살 공화국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있고, 마음 아프지만 누군가의 곁에는 항상 있을 법한 자살 생존자가 지금도 내 옆이라고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그 사람이 누가 되었던 아프고 상처로 남은 기억들 일지라도 소소한 일상에서 자신을 잘 다독이며 견뎌주기를 바라고 응원하고 싶네요.
작성자 익명
신고글 트 라 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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