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사람의 부와 명예만을 바라보지 마라.
또 그게 운으로 이룬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셀 수 없이 많은 고통에 몸이 찢겨 나가도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들의 시린 상처를 들춰보라.
거기에 답이 있다.
까지고 부러지고 찢어진 내 두 발.
30년 동안 아물지 않은 그 상처가 나를 키웠다."
오래 전 발레리나 강수진님의 발 사진이 공개되면서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강수진님은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한결같이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강수진님이 현역으로 활동하실 때와 비교해서
토슈즈의 보호 패드도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강수진님의 발에 비해 깨끗한 발을 가진 발레리나들도 많다고 합니다.
또한 뼈가 부러졌는데도 붕대를 감고 연습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도 아니고요.
더 오래 춤을 추기 위해 다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현명한 행동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수진님의 찢기고 부어오른 발 사진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노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떤 인터뷰에서 강수진님의 하루 일과를 물은 적이 있는데
강수진님은 매일같이 아침 6시면 눈을 뜨고
커피 내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커피가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사우나를 하며
밤새 굳은 근육과 뼈 마디 마디를 풀어주신다고 하네요.
우리는 예술가의 삶을 떠올릴 때
늦은 밤까지 연습이나 작업을 하고 동이 틀 무렵 잠이 든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요.
하지만 강수진님은 늦게까지 연습에 매진하면서도
늘 이른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서 다시 연습을 시작하신다고 합니다.
이미 세계 최정상의 발레리나이지만
늘 발레를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순간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나는 발가락으로 온몸을 지탱하며
목숨을 걸고 전쟁처럼 하루를 보냈습니다.
발레를 하기 위해 태어난 몸은 없습니다.
하루도 그냥 보내지 않은 치열한 인생이 있을 뿐."
대한민국 발레의 전설인 강수진님은 2016년 현역에서 은퇴를 한 뒤
현재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십니다.
강수진님은 초등학교 때 처음 무용을 접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한국무용으로 예중에 입학을 하셨습니다.
발레과에 전공자가 부족해 학교에서 타 전공생들 중에 발레로 전향할 학생을 지원받았고
그 때 강수진님이 지원하게 된 것이 현재 대한민국 발레 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수진님 또한 처음부터 훨훨 날아다닌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한국무용과 발레는 기초 동작부터 완전히 달랐고
중학교 1학년이라는 나이는 발레를 전공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족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감성과 표현력으로
어린 나이에 모나코 왕립 발레 학교에 초청을 받아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지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그 곳에서 강수진님은 늘 자괴감에 빠지곤 하셨답니다.
성인에게도 힘든 타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아직 어린 소녀에게는 정말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강수진님을 더 발레에 몰입하게 만들었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 남들이 잠든 늦은 밤에도 몰래 연습실에 나와서 혼자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강수진님은 그 외롭고 힘든 시간이 자신을 가장 많이 성장시킨 시간이었다고 회상하십니다.
"나의 입지는 탄탄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행운이 아닌
내가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쌓아올린 것이기에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내가 쌓은 모든 것에 요행이란 하나도 없다.
작은 것 하나라도 모든 것은 내가 직접 쌓은 나의 실력이었다."
1985년 강수진님은 세계 4대 발레 콩쿠르 중에 하나인
스위스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 도전합니다.
발레는 서양인들의 전유물이며 동양인은 발레를 못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동양인의 콩쿠르 진출에 우려섞인 시선도 있었지만
강수진님은 섬세한 표현력으로 관객을 압도하였고 결국 입상에 성공합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도 점차 강수진님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발레 또한 관심을 받게 되었지요.
1986년 강수진님은 19세의 나이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정식 입단합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세계 5대 발레단 중에 하나이며
강수진님의 입단은 아시아인 최초라고 합니다.
"나의 유일한 경쟁자는 어제의 나다.
눈을 뜨면 어제 살았던 삶보다
더 가슴 벅차고 열정적인 하루를 살려고 노력한다.
연습실에 들어서며 어제 한 연습보다 더 강도 높은 연습을
한 번, 1분이라도 더 하기로 마음먹는다.
어제를 넘어선 오늘을 사는 것, 이것이 내 삶의 모토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는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정말 많기 때문에
신입 발레리나의 경우에는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설사 무대에 오른다고 해도 보이지도 않는 뒷 쪽에 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강수진님 또한 이 무명의 시간을 오랜 기간 거치셨지요.
처음에는 군무의 일원으로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다섯 번째 순서라
선배들이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지만 경우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시간은 강수진님에게 무척이나 힘들었고
그렇게 철저한 강수진님조차 폭식증을 겪으며 살이 10kg이나 늘어나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시필드>라는 작품 군무 자리가 비어
드디어 강수진님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하지만 그 날 강수진님은 무대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최악의 군무를 선보이게 됩니다.
그 때 강수진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하네요.
그 때부터 강수진님은 무대에 설 가능성이 없어도
항상 준비된 사람이 되어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연습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숨겨진 재능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우면서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어제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오늘의 노력> 이다."
이 날의 위기는 강수진님에게 큰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강수진님은 그 날을 교훈 삼아
후회없이 사는 인생을 위해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신다고 합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살았던 모든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1992년 <로미오와 줄리엣> 주역을 시작으로 강수진님은 날아오르기 시작합니다.
1999년 무용계의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여자무용수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발레리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 시점에
몇 년 동안 강수진님을 괴롭혔던 정강이뼈 골절이 큰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금이 간 정강이뼈의 조직이 곪아 무대에 서기는 커녕 두 발로 서 있을 수 조차 없게 된 것이지요.
그 때 강수진님의 나이는 서른 둘,
어쩌면 정말 발레를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고
강수진님은 이 때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정성어린 치료와 응원으로
의사들조차 포기했던 뼈와 근육이 서서히 붙기 시작하였고
거의 1년만에 강수진님은 다시 토슈즈를 신는 기적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매일 높이며 성장을 거듭하고 싶다면
누구나 하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힘들다.
최고의 인생을 살고 싶다면 최고의 노력을 해라."
다시 두 발로 서게 되었을 때는 다리가 거의 올라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강수진님은 처음 땅에 두 발을 디디는 아이의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복 직후 선 무대에서도 처음에는 실수를 많이 했지만
가족들의 지극한 사랑과 동료,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지요.
큰 위기를 딛고 강수진님은 다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여전히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아름다운 춤을 추고 계십니다.
작성자 그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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